4부 · 오래 걷는 신앙
18장 희망은 내일의 결과보다 오늘의 방향
달라졌다고 말하기 어려운 날
모임이 여러 약속을 바꾼 뒤에도 갈등은 생겼습니다. 준비가 늦어졌고, 누군가의 말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했고, 새로운 사람이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날도 있었습니다. 수진은 이렇게 노력해도 결국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변화가 있다면 문제가 사라져야 한다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은정은 예전과 다른 점을 떠올렸습니다. 이제는 늦어질 때 먼저 알리는 사람이 있었고, 불편한 말을 들었을 때 나중에라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역할을 줄이고 싶다는 요청이 곧 소속을 포기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문제의 존재만 세면 보이지 않던 변화가 문제를 다루는 방식 안에 있었습니다.
희망을 품는다는 것은 모든 일이 좋은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주장하는 일과 다릅니다. 실제로 나아지지 않는 부분도 있고, 원했던 관계가 끝나는 일도 있습니다. 그 사실을 숨기지 않으면서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선한 방향이 있는지 묻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희망은 현실을 보지 않기 위한 장막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행동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과 평범한 수고
고린도전서 15장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신자들의 소망을 다루며 마지막에는 흔들리지 않는 수고를 권합니다. 이 장의 소망은 단지 기분을 밝게 유지하라는 조언과 다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적인 고백에 기대어 현재의 삶을 바라보는 방향입니다. 이 책은 그 신학적 주장을 모든 결과가 곧 좋아진다는 낙관론과 구별합니다.
소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누군가의 실패를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언젠가 좋아질 것이라는 말이 지금의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잘못한 일은 바로잡아야 하고, 잃은 것은 애도할 시간이 필요하며, 바꿀 수 있는 조건은 실제로 바꾸어야 합니다. 미래의 소망은 현재의 생활을 생략하는 면허가 아닙니다.
동시에 당장의 성과만으로 모든 수고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 번의 대화가 상대를 바꾸지 못했다고 해서 정직하게 말한 일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모임의 약속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서로를 존중하는 생활이 덜 가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보이는 결과의 크기와 행동의 의미는 항상 같지 않습니다.
관계가 끝난 뒤에도 배운 것은 남을 수 있습니다. 더 일찍 한계를 말해야 했다는 깨달음, 다른 사람의 사정을 공개하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 나 혼자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다는 이해입니다. 그 배움을 인정한다고 끝난 관계를 반드시 좋은 경험으로 포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팠다는 사실과 배운 것이 있다는 사실은 함께 놓일 수 있습니다.
작은 변화의 흔적을 찾기
변화를 기록할 때에는 완벽하게 성공한 날만 적지 않아도 됩니다. 화가 났지만 보내려던 문장을 한 번 고쳤다는 것,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숨기지 않고 먼저 알렸다는 것, 도움을 거절당했을 때 설득을 멈췄다는 것도 변화의 흔적입니다. 이전의 자동적인 반응 사이에 선택의 공간이 생긴 것입니다.
이런 기록이 자기만족의 목록이 되지 않으려면 상대의 경험도 들어야 합니다. 나는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지만 상대에게는 같은 불편함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달라진 점과 여전히 어려운 점을 함께 물으면 기록이 더 정확해집니다. 변화는 나의 의도에 대한 보고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목표의 크기도 조정할 수 있습니다. 모든 관계에서 언제나 친절하겠다는 결심은 방향을 말하지만 행동을 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이번 주에는 누군가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보기, 부탁을 받으면 일정을 확인한 뒤 답하기, 사과할 때 의도 설명을 먼저 하지 않기처럼 한 가지를 정할 수 있습니다. 작은 목표는 사랑을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연습할 자리를 줍니다.
실패했을 때에는 목표를 더 세게 선언하기보다 무엇이 어려웠는지 살펴야 합니다. 너무 피곤했는지, 필요한 정보가 없었는지, 거절을 두려워했는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이 있었는지 확인합니다. 책임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변화가 가능한 조건을 찾는 태도입니다. 의지만 다그치는 방식으로는 오래 이어 가기 어렵습니다.
함께 걸을 사람을 남기기
모임은 다음 계절에도 계속 만나기로 했습니다. 규모를 키우거나 더 많은 일을 시작하는 계획은 세우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읽고 이야기하고, 새로운 사람이 오면 자리를 설명하기로 했습니다. 누군가 쉬어야 할 때에는 다시 돌아올 문을 닫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결정은 겉으로 보기에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한계를 알고도 관계를 지속할 방법을 찾는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선언하는 순간보다 사랑을 반복할 조건을 만드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일정과 역할, 대화의 약속이 그 조건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함께 걸을 사람은 나의 모든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 다른 의견을 말하고, 잘못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사람 전체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서로의 삶을 통제하지 않으면서 책임 있게 관심을 두는 관계입니다.
책의 마지막에서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사랑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완전한 정의를 외우는 일만도, 늘 따뜻한 감정을 유지하는 일만도 아닐 것입니다. 오늘 만난 사람을 내 판단과 편의를 위한 수단으로 줄이지 않고, 그 사람의 말과 선택, 나의 책임을 함께 살피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패한 날에도 그 방향을 다시 고르는 일일 수 있습니다.
함께 읽을 본문: 고린도전서 15:12–28, 50–58. 부활에 관한 고백과 현재의 수고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본문의 논지를 따라 읽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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