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언어를 다시 배우다
4장 믿음은 모르는 것을 지우지 않는다
확신을 말해야 하는 자리
모임에서 누군가 어려운 일을 이야기하면 곧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서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확실한 전망을 약속하면 듣는 사람은 오히려 혼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두렵다는 말을 더 꺼내기 어렵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을 때 자신의 믿음이 부족했는지 의심하게 됩니다.
수진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한 뒤 곧바로 덧붙였습니다. 그래도 믿어야겠지요. 그녀에게 믿음은 두려움을 말한 것을 취소하는 문장처럼 쓰였습니다. 은정은 믿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함께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 덕분에 수진은 자신이 실제로 걱정하는 일을 조금 더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언어를 사용할수록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직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결과, 내가 가진 정보,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서로 관련되지만 같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강하게 원하는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곧바로 하나님의 약속이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신뢰와 예측의 차이
히브리서 11장은 여러 인물의 믿음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삶을 모두 즉각적인 성공으로 묶지 않습니다. 약속을 향해 걸었지만 생전에 모든 것을 얻은 것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람들도 나옵니다. 이 흐름은 믿음을 원하는 결과를 확실히 확보하는 기술로 이해하는 생각에 질문을 던집니다.
관계에서의 신뢰 역시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는 능력과 다릅니다. 친구를 믿는다고 해서 친구가 한 번도 늦지 않고 어떤 실수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뢰에는 그 사람을 알아 온 경험과 문제가 생겼을 때 대화할 수 있다는 기대가 들어 있습니다. 신앙의 믿음을 인간관계와 완전히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예측과 신뢰를 구별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는 비교입니다.
모르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태도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살피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이해되지 않는 대목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을 품는 일과 아무렇게나 결론 내리는 일은 다릅니다. 질문은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질문이 당장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질문은 오랫동안 남고, 설명을 들은 뒤에도 마음이 따라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을 불성실의 증거로만 해석하면 신앙생활은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공간이 됩니다. 신뢰를 배운다는 것은 이해의 속도를 꾸미지 않고 함께 머무를 수 있는 관계를 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확인할 수 있는 다음 행동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거대한 결론보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행동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연락하기로 한 사람에게 소식을 묻고, 해야 할 일을 나누고, 알지 못하는 정보는 아는 사람에게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을 한다고 해서 믿음이 계산적인 것으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책임 있게 현실에 참여하는 한 방식입니다.
민호는 모임의 계획이 잘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실제로는 장소의 사용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일이 어긋나자 모두 좋은 뜻으로 하는 일이니 이해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일은 결과를 낙관하는 태도보다 확인하지 않은 책임을 인정하고 새로운 시간을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적인 표현이 실무적인 확인을 대신하면 다른 사람이 그 비용을 치르게 됩니다. 믿고 맡겨 달라는 말에는 무엇을 맡는지, 언제까지 하는지, 어려워질 때 어떻게 알리는지가 따라야 합니다. 구체성을 더하는 것은 신뢰를 낮추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실제로 의지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일입니다.
반대로 모든 조건을 통제할 수 있을 때까지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관계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필요한 확인을 한 뒤에도 남는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그때에는 가능한 범위를 설명하고 한 걸음을 선택해야 합니다. 확인할 책임과 통제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함께 배우는 것입니다.
질문을 가지고 함께 있기
누군가 믿음에 관한 의문을 이야기할 때 곧바로 논쟁을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엇이 가장 이해되지 않는지, 그 질문이 어떤 경험과 이어져 있는지 들어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문장으로 표현된 의문도 누군가에게는 지적인 문제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와 연결된 문제일 수 있습니다.
대답을 모를 때에는 모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신 함께 확인할 본문이나 자료를 찾겠다고 제안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는 척하며 관계의 권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상대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틀린 대답을 고치는 모습은 때로 완벽해 보이는 설명보다 신뢰를 줍니다.
오늘 내가 확신이라고 부르는 것 가운데 단지 익숙한 추측은 없는지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결과를 약속할 수 없더라도 지킬 수 있는 작은 약속을 정해 보십시오. 내일 연락하겠다, 함께 자료를 살펴보겠다, 어려운 이야기를 끝까지 듣겠다는 약속입니다. 미래 전체를 소유하지 않아도 지금의 태도에는 책임질 수 있습니다.
믿음은 모르는 것들을 모두 지워 하얀 종이를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남아 있는 질문 곁에 신뢰의 흔적을 더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맡겨야 하는지 구분하면서, 아직 보이지 않는 결과 앞에서도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함께 읽을 본문: 히브리서 11:1–16, 32–40. 이 장에서 제시한 신뢰와 예측의 구별을 본문 전체의 다양한 삶과 비교해 보십시오.
성경 본문 확인
World English Bible · 각 장의 본문에서 문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