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언어를 다시 배우다

3장 쓸모보다 먼저 있는 존엄

소개가 끝난 뒤에 남는 사람

새로운 사람이 모임에 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직업이나 하는 일을 묻습니다. 대화를 시작하는 편리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 대답이 사람을 대하는 온도를 결정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직함에는 질문이 이어지고 어떤 대답에는 잠깐의 침묵이 흐릅니다. 아무도 차별하려고 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대화의 길이는 서로 달라집니다.

민호는 새로 온 사람이 당분간 일을 쉬고 있다고 하자 곧바로 구직에 관한 조언을 했습니다. 상대가 도움을 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하루가 일자리 유무만으로 설명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책을 읽는지 이야기할 수도 있었지만 대화는 부족한 것을 채우는 방향으로만 흘렀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 안에도 그 사람을 결핍으로만 보는 시선이 숨어들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낯선 언어, 몸의 불편함처럼 실제로 살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건 하나가 그 사람 전체를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생각을 나눌 동료이고, 선택할 권리가 있는 생활인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말할 때

창세기 1:26–28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연결해서 말합니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다양한 설명이 제시되어 왔지만, 사람의 가치를 직업이나 생산성만으로 환산하지 않도록 이끄는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이 책에서는 타인을 유용한 수단으로만 보지 않는 태도와 연결해 생각합니다.

형상이라는 말을 누가 더 능력이 뛰어난지를 재는 표준으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말이 빠르고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만 존엄한 것도 아닙니다. 나의 기대에 맞게 반응하지 못하는 사람도 도구나 짐이 되지 않습니다. 존엄은 상대가 나를 만족시킨 대가로 내가 수여하는 상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존중은 추상적인 호감보다 구체적인 절차에 가까워질 때가 있습니다. 설명을 알아들을 시간을 주는 것, 대신 결정하기 전에 의사를 묻는 것, 이름을 부르는 방식에 주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소중하다는 문장을 쉽게 말하면서도 바쁜 순간에는 이 절차들을 생략합니다. 실제 존중은 바로 그 생략되는 자리에서 확인됩니다.

누군가를 대신해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 사람 앞에서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능한 부분은 당사자가 직접 말하도록 기다리고,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확인해서 보탭니다. 존중은 독립성을 강요하는 것과도 다릅니다. 스스로 할 수 있어야 가치 있다는 압박을 주지 않으면서 선택에 참여할 길을 찾는 것입니다.

나에게도 적용되는 기준

우리는 타인에게는 너그러우면서 자신에게는 유난히 좁은 기준을 적용하기도 합니다. 친구가 쉬고 있을 때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하지만 자신이 쉬는 날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느낍니다. 관계에서 받기만 하는 시기가 오면 사라지는 편이 낫겠다는 과장된 결론을 내리기도 합니다. 타인에게 인정한 존엄을 자신에게도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일은 모든 선택을 정당화하는 일이 아닙니다. 나는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문장과 내가 한 말은 고쳐야 한다는 문장이 함께 참일 수 있습니다. 행동을 평가할 때 존재 전체를 폐기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잘못을 직면할 여지도 생깁니다.

수진은 모임 자료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날, 자신이 빠지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자료를 보완할 방법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수진은 자신이 필요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묻고 있었습니다. 한 번의 부족한 결과가 소속의 자격을 결정하는 문제로 커진 것입니다. 대화는 먼저 그 둘을 나누는 데서 시작해야 했습니다.

자료의 누락은 보완할 수 있습니다. 역할이 너무 많았다면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결과물 이상의 사람이라는 확인도 필요합니다. 이 확인이 구체적인 책임을 지우지 않으면서 주어질 때 관계는 실패를 숨기는 곳보다 배울 수 있는 곳에 가까워집니다.

사람을 요약하지 않는 연습

이번 주에 자주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십시오. 예민한 사람, 게으른 사람, 말이 안 통하는 사람처럼 한 단어로 고정해 놓은 표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상대의 반복되는 행동을 정확히 짚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격의 판정이 모든 상황을 해석하는 유일한 틀이 되면 새로운 정보를 놓칩니다.

그 대신 관찰한 행동과 그 영향을 구체적으로 말해 볼 수 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늦게 왔다는 사실과, 그래서 준비를 혼자 해야 했다는 영향을 구분해서 설명합니다. 이 표현은 상대를 미화하지도 않고 한 행동으로 존재 전체를 닫아 버리지도 않습니다. 바꿀 수 있는 지점이 더 잘 보입니다.

새로 온 사람에게는 요즘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은 건너뛰어도 된다고 실제 태도로 보여 줄 수도 있습니다. 상대의 정보를 많이 얻는 것만이 친밀함은 아닙니다. 상대가 공개할 범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경험도 신뢰를 만듭니다.

존엄을 지키는 일은 때로 아무것도 추가하지 않는 선택입니다.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사정을 설명하지 않는 것, 사진을 올리기 전에 동의를 구하는 것, 도왔다는 이야기를 자신의 미담으로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름과 선택, 목소리를 그 사람에게 돌려주는 작은 행동들 속에서 인간을 보는 신앙의 언어가 구체화됩니다.

함께 읽을 본문: 창세기 1:26–31, 야고보서 2:1–9. 사람의 가치와 사람을 차별하는 공동체의 행동을 함께 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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