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언어를 다시 배우다

1장 사랑을 안다는 말의 무게

좋은 마음이 남긴 불편함

독서 모임에서 수진이 한동안 말이 없자 민호가 곧바로 조언을 시작했습니다. 요즘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며 쉬는 날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는 분위기를 풀어 주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진은 그 말을 듣고 더욱 조용해졌습니다. 쉬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전에 자신의 성격이 문제로 정리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민호의 마음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선한 의도만으로 그 대화가 좋은 대화였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을 배운다는 것은 이 두 사실을 함께 견디는 일입니다. 나는 상대를 위하려고 했을 수 있고, 동시에 상대를 충분히 듣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둘 중 하나만 인정하면 자기변명이나 자기비난에 머물기 쉽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흔히 마음의 강도로 설명합니다. 얼마나 보고 싶은지, 얼마나 걱정하는지, 얼마나 많이 해 주었는지로 말합니다. 이런 경험은 관계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강한 감정이 늘 상대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걱정이 커질수록 상대의 일정을 모두 알고 싶어질 수도 있고, 많이 도왔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때 물을 질문은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의 단정만이 아닙니다. 그 사랑이 지금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상대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느냐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심판하는 일보다 행동을 살피는 일이 구체적입니다. 나는 묻기 전에 결론을 냈는지, 거절을 들은 뒤에도 계속 밀어붙였는지, 도움을 준 사실을 다른 사람 앞에서 공개했는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단어보다 넓은 맥락

그리스어 아가페는 성경의 사랑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단어 하나만으로 모든 문맥의 사랑을 자동으로 거룩한 사랑이라 판정할 수는 없습니다. 언어의 뜻은 그것을 사용하는 문장과 관계 속에서 드러납니다. 아가페를 감정이 전혀 없는 의무로, 다른 사랑을 모두 이기적인 감정으로 나누어 놓으면 실제 사람의 삶도 성경의 다양한 표현도 좁아집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은 뛰어난 말과 지식, 놀라운 능력, 큰 희생을 열거한 뒤 사랑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이어서 사랑을 인내와 친절, 자기 자랑을 내려놓는 태도, 진실과 함께 기뻐하는 모습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에는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가뿐 아니라 다른 사람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들어 있습니다. 큰일을 했다는 사실이 그 행동의 관계적 의미를 대신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완벽한 사람의 자격표처럼 읽으면 쉽게 낙심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조급해졌다는 이유로 지금까지의 모든 사랑이 거짓이었다고 결론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문장이 비추는 방향을 살피면 좋겠습니다. 사랑을 더 크게 선언해야 하는지보다, 오늘 내 말에서 자랑을 조금 덜어 낼 수 있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인내를 말한다고 해서 부당한 대우를 계속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같은 대목에는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사랑을 설명하는 여러 표현은 서로를 제한하고 보완합니다. 한 구절의 일부만 떼어 누군가의 침묵을 요구하면, 사랑에 대한 설명이 지배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의 선을 묻는 일

사랑의 방향을 살필 때에는 상대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묻게 됩니다. 내가 주고 싶은 것과 상대에게 필요한 것이 같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에게 해결책을 쏟아내거나,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에게 계속 연락하는 일은 관심에서 시작해도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수진은 며칠 뒤 민호에게 그날의 불편함을 말했습니다. 민호는 처음에는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려 했지만, 말을 멈추고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 물었습니다. 수진은 일정 자체보다 이미 약속한 일을 혼자 떠안게 된 과정이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필요한 것은 휴식에 관한 충고만이 아니라 역할을 다시 나누는 대화였습니다.

이 장면에서 사랑은 더 감동적인 말을 찾아낸 결과로 자라지 않았습니다. 민호가 자기 해석을 잠시 보류하면서 다른 정보가 들어올 자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달라졌습니다. 상대를 위한다는 것은 상대에 관한 나의 설명이 언제든 수정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상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일이 언제나 선은 아닙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부탁도 있고, 다른 사람을 해치는 요청도 있습니다. 사랑은 욕구를 무조건 충족시키는 서비스가 아닙니다. 필요한 것을 듣고, 가능한 범위를 정직하게 밝히고, 함께 선택지를 찾아가는 관계의 태도입니다.

오늘의 한 장면을 다시 읽기

오늘 내가 누군가를 위한다고 말했던 순간을 하나 떠올려 보십시오. 그때 상대는 무엇을 말했고, 나는 무엇을 추측했습니까. 실제로 들은 문장과 마음속에서 덧붙인 설명을 나누어 적어 보면 둘 사이의 간격이 보입니다. 상대가 피곤하다고 했다는 사실과, 나를 귀찮아한다고 생각한 것은 같은 정보가 아닙니다.

다음에는 질문 하나를 바꾸어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따지기 전에, 내가 놓친 부분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질문의 내용뿐 아니라 대답을 기다리는 태도도 필요합니다. 이미 반박을 준비하면서 형식적으로 묻는다면 상대는 그 자리가 실제로 열려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을 배워 가는 사람은 자신의 선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선의를 증명하느라 상대의 경험을 지우지 않으려 합니다. 내 마음이 좋았다는 말에 머무르지 않고, 그 마음이 어떤 행동이 되어야 했는지를 다시 묻습니다. 그 질문을 견디는 만큼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조금 더 실제적인 무게가 생깁니다.

함께 읽을 본문: 고린도전서 13:1–13. 이 장은 본문을 관계의 언어와 행동에 적용한 묵상이며, 아가페라는 낱말의 모든 용례를 설명하는 어휘 연구는 아닙니다.

성경 본문 확인

World English Bible · 각 장의 본문에서 문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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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페이웃 사랑